블로그 이미지
숏퐁숑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70)
게임기획자 준비 (18)
게임기획 참고자료 (7)
프로그램 (33)
숨쉬기 활동 (10)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4.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공지사항

태그목록

최근에 올라온 글

수메르문명 (-文明 Sumer Civilization)

고대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있는 지역명이며 고대문명의 발상지이다. 뒤에 바빌로니아로 불리던 지방의 북쪽 반을 아카드라 하고 페르시아만에 면한 남쪽 반을 수메르라 했다. 다만 수메르라는 호칭은 아카드인이 부르던 이름이었고, 수메르인 스스로는 키엔기라 했다. 이 지역에 언제부터 수메르인이 와서 살았는지 불분명하다.

수메르문명의 발전은 다음과 같다.
1]]우루크기에 나타난 쐐기문자[楔形文字(설형문자)]의 원형인 고졸문자(古拙文字)는 수메르인이 발명한 것이며, BC 50년경까지 거의 3000년에 걸쳐 고대오리엔트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쐐기문자를 채용한 주요 민족은 아카드인·아시리인·엘람인·후르리인·히타이트인·카시트인·우라르투인 등이다. 수메르문화의 대부분은 수메르어와 쐐기문자를 통해 고대오리엔트로 전해졌다. 수메르어는 접두사·접중사(接中辭)·접미사가 발달한 전형적인 교착어(膠着語)이나, 언어적 계통은 아직 해명되어 있지 않다.
수메르인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주권을 상실한 우르 제3왕조 이후부터 수메르어는 사어화(死語化)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이후에도 일종의 문화어로서 존속하고 학습되었다. 대역(對譯)된 어휘표 등이 바빌로니아와 히타이트·엘람·우가리트·에블라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2]]우루크기로부터 젬데트나스르기(BC 2800년경~BC 2700년경)에 걸쳐 도시가 출현하여 이른바 <도시혁명>이 일어나 도시국가시대 또는 초기왕조시대(BC 2500년경~BC 2350년경)를 맞이했다. 이 시대의 수메르 대도시로는 라가시·움마·우르·우루크·니푸르·슈루파크·에리두 등이 알려져 있다. 아카드지방의 대도시 키시도 수메르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각 도시는 저마다 수호신을 모셨으며, 군주는 수호신에게 선택된 주권의 대행자였다. 군주는 엔시(ensi) 또는 루갈(lugal)이라 불렸다. 라가시에서는 BC 2500년경 우르난셰왕조가 성립되어 약 150년간 지배했다. 3대왕 에안나툼 1세의 <독수리비문>, 움마와의 경계항쟁을 기록한 5대왕 엔테메나의 <원뿔비문>, 왕위찬탈자 우르카기나의 <개혁비문> 등은 창의적인 수메르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라가시의 행정·경제 문서에 의하면, 도시국가에는 수공업에 종사한 전문기술자(금·은·청동 세공인, 보석세공인·대장장이·피혁제조인·모직공·표백인·목수·배목수·소목·도공 등), 전업분화한 어부(바다·민물·운하·늪·투망어부), 원거리 통상에 종사하는 상인 등이 있어서, 신전(神殿)의 분할지가 주어져 있었다. 이들은 신전 직할지의 경영에 참가하였고, 운하·지구(池溝)·제방의 개착과 수리, 성벽의 건조, 기타 공공사업에 종사했다.

가축류는 전문 목축가가 소·당나귀·양·염소·돼지 등을 길렀다. 곡물은 보리·밀, 야채는 양파류·콩류 등을 재배했다.

3]]BC 2350년경, 키시시(市) 출신의 사르곤이 신도시 아가데(아카드)를 세우고, 수메르의 루갈자게시를 무찌르고 사르곤왕조를 수립하였다. 이것이 수메르·아카드지방을 하나로 묶은 아카드왕국(BC 2350년경~BC 2150년경)이다. 약 200년 뒤, 아카드왕국은 자그로스의 산악민족인 구티민족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고, 그 뒤 90년간 메소포타미아는 그 지배하에 놓였다. BC 2060년경, 우루크시의 왕 우투헤갈이 구티민족의 지배에서 수메르·아카드를 해방시켰으며, 그의 신하 우르남무가 우르 제3왕조를 수립했다.

우르남무왕은 관료조직에 의한 집권적 전제정치를 했으며, 세계 최고(最古)의 법전(수메르어로 씌어진 우르남무법전)의 제정자로서 유명하다. 아카드왕조시대에 융성해진 세계무역은 이 시대에 한층 박차가 가해졌고, 속주제에 의한 통치방식도 채용되어 국왕은 <사방 세계의 왕>이라 불렸다. 다섯 왕이 지배한 뒤, 셈계 민족 아무르인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여 수메르민족은 정치적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며, 수메르·아카드지방은 바빌로니아라 불리게 되었다.

그때까지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종의 공용어 위치에 있었던 수메르어 대신 아카드어가 사용되었는데, 수메르문화·수메르종교문서 등은 이 시기에 일제히 문자화되어 수메르어 학습을 위한 문법서·어휘표 등이 작성되었으며 수메르어 문서가 번역되었다. 이신라르사왕조시대(BC 1950년경~BC 1700년경), 바빌론 제1왕조시대 (BC 1830년경~BC 1530년경)에 수메르어로 씌어진 점토판 문서의 내용은 여러 가지이고 방대한 수량에 이르며, 모두 수메르문명의 높은 수준을 나타내는 귀중한 자료이다.
 

메소포타미아문명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지역에 대해 고대 그리스인이 붙인 지역명. 그리스어로 <두 강의 사이>를 뜻한다. 오늘날에는 이라크 및 시리아 북부를 포함하는 광범한 지역의 호칭으로도 쓰인다. 수만 년 전에 인류가 거주했던 유지가 있으며, BC 5000∼BC 4000년에 농경민이 정주했다. 그 뒤 수메르인이 남부의 강 연안에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어서 셈족이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의 2대 제국을 세워 강대한 힘을 보였다. 페르시아인의 내습, 그리스에 의한 헬레니즘화를 거쳐 7세기 후반부터 아랍인에 의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고, 언어도 수메르어·아카드어·아람어를 거쳐, 오늘날에는 아랍어를 쓰고 있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지역(현재의 이라크 대부분과 시리아 및 터키 일부)의 미술. 이 지방은 나일강 유역인 이집트와 함께 인류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며 이와 함께 고대 오리엔트문명으로 고찰된다. 이 인류 최고(最古)의 양 문명은 대략 같은 때인 BC 3500년∼BC 3000년까지의 기간에 각각 역사시대로 접어들었다. 즉 이집트가 파라오(Pharaoh;솔로몬 왕조 시대까지의 이집트왕의 칭호)에 의하여 통일되어 갈 무렵,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수메르인에 의하여 많은 도시국가가 건설되었으며, 점토판(粘土板)에 설형문자(楔形文字)를 이용하여 기록하는 특수한 서법(書法)이 발달하였다. 티그리스강 중류와 상류지방인 북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수메르인 이전의 신석기시대에 속하는 유적이 몇몇 발견되었다. 텔할라프에서 출토된 칠무늬토기[彩紋土器]는 이 지방 문명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데, 신석기시대 이후 문명의 진전에 있어서는 남부 메소포타미아가 먼저 주도권을 잡았다. 텔엘우바이드·우루크 등 각지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의 초기문명을 대표하고 있다. 그리고 수메르인이 건설한 각 도시국가에 왕이 탄생한 BC 3000∼BC 2340년에 이르는 초기 왕조시대에는 도시문명과 미술이 크게 발달하였다.


1 메소포타미아문명의 특색
이집트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의 기원과 형성기는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쪽이 사막으로 막힌 가늘고 긴 나일계곡과 많은 지류에 비하여 사방이 확 트이고 평탄한 메소포타미아 하상지대(河床地帶)는 그 지리적 조건이 대조적으로 다르다. 자연적인 방벽(防壁)이 거의 없는 비옥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어느 쪽으로부터도 외적이 침입할 수 있었으므로 이집트처럼 단일 지도자에 의한 통일국가 형성이라는 이상(理想)은 이루어지기가 어려웠으며, 그러한 야망이 있었던 왕일지라도 그 명맥을 오래도록 지속시켜 나갈 수는 없었다. 예컨대 수메르인 도시국가의 경우, 왕은 진짜 주권자인 각 지방신(地方神)들의 단순한 집사(執事)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들이었음이 알려져 있다. 그것은 지방신이 정치·경제·노동력·생산 등의 일체를 장악하는 이른바 <신권적 사회주의(神權的社會主義)>하의 통제사회였기 때문이며, 신전이 그 행정적인 중심지였다. 따라서 수메르의 도시국가에서는 성역(聖域)에 창고·작업장·서기(書記)의 방 등을 짓고, 그 주위에 주택을 밀집시키는 도시계획이 실현되었다. 그리고 이 성역의 중심을 이루는 높은 지대(地臺)에 신전이 건축되었다. 이러한 인공적인 고지대(高地帶)는 곧 거대한 규모로 발전하였고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견줄 만한 위용을 지니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지구라트(ziggurat)이고, 평원에 있어서의 지표적(地標的) 효과는 사막에 있어서의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기능과 상징하는 의미는 파라오의 분묘인 피라미드와 현저한 차이가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오랜 역사에 있어서 각 지방의 대립항쟁, 외적의 침입, 새로운 세력의 흥망 등은 예사로운 일이었으므로, 전란은 끊이지 않았다. 이와 같은 혼란에도 불구하고 메소포타미아문명은 수에르 이후 약 3000년에 이르렀고, BC 539년에 신바빌로니아왕국이 멸망될 때까지 뚜렷한 특질을 유지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미술에서는 수메르미술·바빌로니아미술·아시리아미술, 그리고 신바빌로니아미술로 구별하여 각각 관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임기획 참고자료 > 수메스 신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도 12궁  (0) 2016.12.14
Posted by 숏퐁숑
, |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